전주에서 한 끼는 좀처럼 가볍게 끝나지 않습니다. 점심에 비빔밥을 먹으러 왔다가 해장으로 콩나물국밥을 찾고, 저녁이 되면 가맥과 막걸리골목으로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맛의 도시’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닙니다. 다만 이름난 도시인 만큼 같은 음식을 파는 집이 골목마다 있어, 무엇을 어디서 고를지부터 막막해지기 쉽습니다. 특정 가게를 단정해 추천하기보다, 대표 음식 몇 가지의 성격과 ‘좋은 집을 알아보는 눈’을 함께 정리합니다. 이것만 챙기면 전주에서의 한 끼는 좀처럼 실패하지 않습니다.

전주, 왜 맛의 도시가 됐을까

전주의 밥상이 유난히 풍성한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너른 호남평야에서 쌀과 채소가 넉넉히 났고, 가까운 서해의 해산물과 젓갈, 들에서 거둔 콩과 나물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재료가 풍부하니 반찬 가짓수가 늘고, 발효와 저장 음식이 자연스럽게 발달했습니다. 비빔밥의 색색 나물도, 한정식의 상다리도, 콩나물국밥과 막걸리 한 상도 모두 이 풍요로운 식재료 위에서 자랐습니다. 그래서 전주에서는 평범한 백반 한 상조차 허투루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든 기본기가 받쳐 주는 도시라는 점을 알고 가면, 한 끼 한 끼가 달리 보입니다.

전주비빔밥 — 가짓수보다 재료

전주를 대표하는 한 그릇입니다. 놋그릇에 제철 나물과 황포묵, 고추장을 색색으로 두르고, 곳에 따라 육회를 올려 비벼 먹습니다. 화려해 보이지만 맛의 핵심은 재료의 신선함과 균형입니다. 나물 가짓수만 많고 맛이 겉도는 곳보다, 재료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집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한 술 뜨기 전 천천히 비비는 과정부터가 이 음식의 절반입니다.

같은 비빔밥이라도 갈래가 있습니다. 육회를 얹는 육회비빔밥은 고소함이 진하고, 익힌 재료 위주의 일반 비빔밥은 누구에게나 무난합니다. 돌솥에 담아 바닥에 누룽지를 만드는 집이 있는가 하면, 놋그릇에 차게 내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집도 있습니다. 날것이 부담스럽다면 주문 전에 육회를 빼 달라고 하면 됩니다. 곁들이로 나오는 콩나물국이나 맑은탕은 입가심으로 좋으니 남기지 말고 함께 즐기세요.

여기에 곁들이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비비기 전 고추장의 양을 입맛에 맞춰 조절하면 같은 그릇도 전혀 다른 맛이 되고, 재료를 색색으로 따로 올려 내는 집에서는 섞기 전 한 번 눈에 담아 두는 것도 작은 재미입니다. 거기에 시원한 동치미나 맑은 탕 한 그릇이 더해지면 한 끼가 더 깊어집니다. 놋그릇 특유의 묵직함과 색의 조화까지 어우러져, 전주비빔밥은 화려하면서도 균형이 잡힌 한 그릇으로 전주라는 도시를 가장 닮은 음식으로 꼽히곤 합니다.

콩나물국밥 — 두 갈래를 알고 가자

해장으로도, 아침으로도 좋은 음식입니다. 전주의 콩나물국밥은 크게 두 갈래로 갈립니다. 첫 번째는 토렴식입니다. 뜨거운 국물에 밥을 여러 번 말았다 따르기를 반복해 밥알 사이까지 온기가 배면 뚝배기에 담아 내는 방식으로, 남부시장 골목을 대표하는 형태입니다. 칼칼하고 펄펄 끓어 추운 날이나 속이 헛헛할 때 가장 어울립니다.

두 번째는 국물을 맑게 끓이고 수란을 따로 곁들이는 방식입니다. 삼백집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이 계열은 한층 부드럽고 순합니다. 수란에 김가루를 얹고 뜨거운 국물을 한 숟갈 떠 넣어 풀어 가며 먹는 것이 요령인데, 새우젓으로 짠맛을 조절하면 입맛에 딱 맞는 한 그릇이 됩니다. 맑은 국물 쪽은 비빔밥에 곁들이는 깔끔한 국으로도 잘 어울립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기보다 그날 속이 원하는 쪽으로 고르면 됩니다. 아침 일찍 문을 여는 집이 많아, 여행 첫 끼로도 안성맞춤입니다. 여기에 모주 한 잔을 곁들이면 전주 아침을 가장 전주답게 시작하는 셈입니다.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대추·계피를 넣고 뭉근히 졸여 알코올을 거의 날린 달큰한 음료로, 콩나물국밥과 함께 전주 아침 밥상의 단골 조합입니다.

전주 콩나물국밥 — 토렴식과 수란식으로 갈린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
전주 콩나물국밥 — 토렴식과 수란식으로 갈린다. 새우젓으로 간을 맞춰 먹는다사진 Mobius6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한정식과 백반 — 첫 상부터 가득

전주에서 거하게 한 상 받고 싶다면 한정식입니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반찬이 상을 채우고, 생선구이와 찌개, 나물과 젓갈, 갖은 전이 줄지어 오릅니다. 상다리가 휜다는 말이 과장이 아닐 만큼 가짓수가 많아, 한 상만 받아도 전주 음식의 폭을 한눈에 보는 기분이 듭니다. 다만 한정식은 가격대가 넓으니, 인원과 예산을 가게에 미리 맞춰 두면 마음이 편합니다.

부담 없이 집밥 같은 한 상을 원한다면 백반이 어울립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제철 반찬과 국, 찌개가 정갈하게 차려져 나와, 여행 중 속을 달래기에 좋습니다. 반찬이 많은 만큼 천천히, 골고루 맛보는 편이 오래 남습니다. 거한 상과 소박한 상 사이에서 그날 일정과 입맛에 맞춰 고르면 됩니다.

가맥 — 전주의 저녁

전주의 밤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가맥입니다. ‘가게 맥주’의 줄임말로, 동네 구멍가게에서 갑오징어·황태·먹갈치 같은 안주를 구워 맥주와 곁들이는 전주식 문화입니다. 거창하지 않아서 더 편안합니다. 노릇하게 구운 갑오징어를 특제 간장 소스에 찍어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을 더하면, 그 자체로 하루의 마무리가 됩니다.

가맥집이 몇 군데 모여 있는 거리도 있습니다. 한옥마을 담장 바깥 쪽, 오래된 동네 골목 안에 가맥집들이 이어지는 자리로, 낮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다가 저녁 무렵 불이 켜지면 비로소 그 자리가 보입니다. 관광객을 위해 꾸민 가게가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일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풍경이라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안주는 갑오징어가 가장 흔하지만, 노릇하게 구운 황태나 짭조름한 먹갈치도 맥주와 잘 어울립니다. 화려한 상차림 없이 불에 구운 안주 하나와 맥주 한 병이면 충분합니다.

막걸리골목 — 삼천동과 서신동은 분위기가 다르다

제대로 된 전주의 밤은 막걸리골목에서 완성됩니다. 전주의 막걸리골목은 크게 두 자리로 나뉩니다. 삼천동 쪽은 오래된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서신동 쪽은 규모가 있는 가게들이 많아 단체 손님이나 처음 오는 여행객들이 더 부담 없이 찾기 좋습니다. 어느 쪽이든 막걸리를 주전자 단위로 시키면 안주가 한 상 가득 따라 나오고, 주전자를 더 비울수록 새로운 안주가 보태지는 방식은 같습니다. 해산물과 전, 나물과 찌개가 줄줄이 오르니 술이 목적이 아니어도 한 상 구경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여럿이 나눠 먹기 좋고, 전주를 처음 찾은 사람이 가장 놀라는 풍경이기도 합니다. 다만 인원수에 맞춰 주전자를 시키는 구조라, 적은 인원이면 상차림과 가격을 미리 물어 두는 편이 좋습니다. 막걸리를 주전자로 시키면 지역 막걸리가 나오는 집이 많은데, 담백한 것과 단맛이 있는 것이 집마다 달라 첫 주전자를 비운 뒤 입맛에 맞는 것으로 바꿔 달라고 해도 됩니다.

전주식 막걸리 — 주전자를 비울수록 안주 한 상이 푸짐하게 따라 나온다
전주식 막걸리 — 주전자를 비울수록 안주 한 상이 푸짐하게 따라 나온다사진 jinho kim · CC0 · Wikimedia Commons

모주 — 술이 약해도 즐기는 한 잔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대추·계피 같은 한약재를 넣고 뭉근히 졸여 알코올을 거의 날린 달큰한 음료입니다. 원래 해장용으로 콩나물국밥에 곁들이던 술이라, 따뜻하게 한 잔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라 해장 자리에 자주 오릅니다. 도수가 낮아 술이 약한 사람도 부담 없이 전주의 술 문화를 맛볼 수 있습니다. 막걸리부터 모주까지, 전주는 마시는 즐거움이 유난히 깊은 도시입니다.

여러 막걸리 — 전주는 막걸리와 모주까지 술과 안주 문화가 깊다
여러 막걸리 — 전주는 막걸리와 모주까지 술과 안주 문화가 깊다사진 Walnussbäumchen · CC0 · Wikimedia Commons

수제 초코파이와 빵 — 줄 피하는 요령

끼니 사이를 채우는 군것질도 전주의 즐거움입니다. 전주의 명물로 자리 잡은 수제 초코파이는 빵집마다 줄을 세웁니다. 풍년제과(PNB)가 원조로 알려져 있고, 부드러운 빵과 크림·잼이 층층이 들어가 선물용으로도 인기입니다. 매장은 한옥마을 경기전 담 근처에 있고, 대부분의 방문객이 오전 11시 이후에 몰리기 때문에 문이 열리는 이른 오전이나 오후 3시 이후 한옥마을 관광객이 흩어지는 시간대를 노리면 줄이 확연히 짧습니다. 당일 품절이 되는 날도 있으니 선물용으로 챙길 생각이라면 오전 중에 들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한옥마을 일대에는 이 초코파이를 비롯해 갓 구운 빵을 내는 가게가 흩어져 있어, 한 손에 들고 걷기 좋습니다.

피순대와 길거리 음식

한 끼로도 든든한 군것질도 있습니다. 선지를 넉넉히 넣어 차진 피순대는 막걸리 안주로도, 국밥 한 그릇으로도 좋습니다. 한옥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문어꼬치, 바게트버거, 수제 아이스크림 같은 길거리 먹거리가 줄지어 있어 손에 하나 들고 걷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다만 같은 메뉴라도 가게마다 맛이 다르고 줄이 길 수 있으니, 너무 욕심내기보다 한두 가지를 골라 천천히 맛보는 편이 낫습니다.

피순대 — 선지를 넉넉히 넣어 차지다. 막걸리 안주로도, 한 끼로도 든든하다
피순대 — 선지를 넉넉히 넣어 차지다. 막걸리 안주로도, 한 끼로도 든든하다사진 s nak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언제 무엇을 먹으면 좋을까

하루를 음식으로 꿰면 동선이 매끄럽습니다. 아침에는 뜨끈한 콩나물국밥으로 속을 풀고, 점심에는 전주비빔밥이나 한정식으로 든든하게 채웁니다. 오후에는 한옥마을을 걸으며 수제 초코파이와 길거리 군것질로 가볍게, 저녁에는 가맥이나 막걸리골목에서 하루를 마무리하면 알찹니다. 한 번의 여행에 모두 넣기 버겁다면, 아침의 국밥과 저녁의 가맥 둘만 지켜도 전주다운 한 끼는 충분히 누립니다.

좋은 가게를 알아보는 눈

가게 사정은 바뀌어도, 고르는 기준은 그대로 쓸모가 있습니다. 몇 가지만 챙기면 헛걸음이 줄어듭니다.

  • 관광지 한복판만 고집하지 않기 — 한 골목만 벗어나도 선택지가 넓어지고 줄도 짧습니다.
  • 재료와 정갈함 보기 — 특히 비빔밥은 가짓수보다 재료의 상태가 맛을 가릅니다.
  • 스타일을 알고 가기 — 콩나물국밥처럼 방식이 갈리는 음식은 미리 취향을 정해 두면 좋습니다.
  • 유명세는 참고만 — 줄이 길다고 내 입맛에 맞는 것은 아닙니다.

직접 가 보고 좋았던 집이 있다면 알려 주세요. 확인해서 이 글에 보태겠습니다. 어디부터 둘러볼지 막막하다면 전주 한옥마을 여행 글에서 동선부터 잡아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