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먹으러 가는 도시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바다를 낀 항구이자 한때 피란민이 모여든 도시, 그리고 시장이 살아 있는 도시라는 세 가지 배경이 겹쳐,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먹거리가 자랐습니다. 진한 국물 한 그릇부터 길거리 주전부리까지, 부산의 한 끼는 그 자체로 도시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부산 음식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부산 음식의 뿌리에는 항구와 피란의 기억이 있습니다. 한국전쟁 때 전국에서 사람들이 부산으로 모여들면서, 고향의 음식과 부산의 재료가 뒤섞여 새로운 한 그릇이 만들어졌습니다. 북쪽의 냉면이 부산의 밀가루를 만나 밀면이 되고, 넉넉히 끓인 돼지뼈 국물이 서민의 한 끼 돼지국밥이 된 것이 그런 예입니다.

여기에 자갈치시장부평깡통시장 같은 큰 시장이 더해지면서, 부산은 사 먹는 즐거움이 유난히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고급 요리보다, 서민의 일상에서 자란 푸짐하고 정직한 음식이 부산 밥상의 중심입니다.

돼지국밥 — 부산의 솔푸드

부산을 대표하는 한 그릇을 꼽으라면 단연 돼지국밥입니다. 돼지뼈와 고기를 오래 고아 낸 뽀얀 국물에 밥을 말고, 수육처럼 썬 고기를 얹어 냅니다. 가게마다 국물 내는 법이 조금씩 달라, 맑게 끓이는 집과 진하게 끓이는 집의 맛이 또 다릅니다.

먹는 방법에도 부산만의 리듬이 있습니다. 부추무침과 새우젓, 다진 양념을 기호껏 넣어 간을 맞추고, 밥과 국을 따로 내는 따로국밥으로도 즐깁니다. 서면과 범일동 일대에는 돼지국밥집이 골목을 이뤄, 부산 사람들의 일상 한 끼가 어떤 모습인지 그대로 보여 줍니다.

돼지국밥은 곁들이는 재료에 따라 이름이 달라집니다. 살코기만 넣으면 돼지국밥, 내장을 더하면 내장국밥, 순대를 넣으면 순대국밥, 이것저것 섞으면 섞어국밥이 됩니다. 취향에 맞게 골라 먹는 재미가 있어, 처음이라면 여러 가지가 두루 든 섞어국밥으로 시작해도 좋습니다.

돼지국밥 — 돼지뼈를 우린 뽀얀 국물에 부추를 얹어 먹는 부산의 솔푸드
돼지국밥 — 돼지뼈를 우린 뽀얀 국물에 부추를 얹어 먹는 부산의 솔푸드사진 chomjong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밀면 — 여름의 면

더운 부산의 여름을 책임지는 면이 밀면입니다. 피란 시절, 귀한 메밀 대신 흔한 밀가루로 냉면을 흉내 내면서 생겨난 음식이라 전해집니다. 쫄깃한 면에 시원한 육수를 부은 물밀면과, 매콤한 양념에 비빈 비빔밀면 두 가지가 기본입니다.

육수에 한약재나 과일을 더해 집집마다 다른 맛을 내는데, 살얼음이 동동 뜬 국물을 들이켜면 더위가 단번에 가십니다. 돼지국밥집에서 밀면을 함께 파는 곳이 많아, 진한 국밥과 시원한 밀면을 번갈아 즐기는 것도 부산다운 한 끼입니다.

밀면을 낼 때는 작은 만두를 곁들이는 집이 많아, 시원한 면과 따끈한 만두를 번갈아 먹는 맛이 쏠쏠합니다. 면을 더 쫄깃하게 즐기고 싶다면 비빔밀면을, 국물을 좋아한다면 물밀면을 고르면 됩니다. 양념장을 따로 주는 집도 있어, 매운맛을 조절해 가며 먹을 수 있습니다.

자갈치와 회 — 바다의 맛

항구 도시인 만큼 바다의 맛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자갈치시장에 가면 갓 잡은 활어를 골라 그 자리에서 회로 떠 먹을 수 있고, 시장 골목에서는 연탄불에 구운 곰장어가 고소한 냄새로 발길을 붙잡습니다. 매콤한 양념에 볶은 꼼장어는 술안주로도 인기입니다.

회를 먹을 때는 가격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좋습니다. '시가'로 파는 활어는 주문 전에 값을 묻고, 시장에서 떠 와 초장집에서 먹을 때는 상차림비를 함께 확인하면 부담이 없습니다.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똑똑하게 고르는 요령은 따로 정리한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니 함께 참고하세요.

부산에서는 곰장어와 꼼장어를 함께 만나는데, 짚불이나 연탄에 통째로 굽는 것이 곰장어, 껍질을 벗겨 매운 양념에 볶는 것이 꼼장어로 흔히 나뉩니다. 회를 먹고 남은 매운탕이나, 잘게 썬 회를 국수에 비벼 먹는 회국수도 항구 도시다운 별미입니다.

자갈치시장 — 갓 잡은 활어를 그 자리에서 회로 즐길 수 있다
자갈치시장 — 갓 잡은 활어를 그 자리에서 회로 즐길 수 있다사진 Bernard Gagnon · CC0 · Wikimedia Commons

길거리의 별미 — 씨앗호떡과 비빔당면

부산의 진짜 재미는 시장 골목의 주전부리에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씨앗호떡입니다. 노릇하게 구운 호떡을 반으로 갈라 해바라기씨와 땅콩 같은 견과류를 듬뿍 넣어 주는데, 달콤한 속에 고소함이 씹혀 한 입 베어 물면 멈추기 어렵습니다. 남포동 BIFF광장 일대가 씨앗호떡의 본고장으로 꼽힙니다.

부평깡통시장에서는 비빔당면이 별미입니다. 삶은 당면에 채소와 양념을 넣어 슥슥 비벼 주는 소박한 음식인데, 가볍게 출출함을 달래기에 그만입니다. 유부 주머니에 당면을 넣어 끓인 유부전골도 시장 골목의 오랜 인기 메뉴입니다.

부산 분식에는 다른 고장과 다른 점도 있습니다. 떡을 어묵 국물에 적셔 먹는 물떡, 얇게 부쳐 바삭한 납작만두처럼 소박하지만 자꾸 손이 가는 메뉴가 시장 골목에 숨어 있습니다. 어묵 국물은 대개 무료라, 주전부리를 먹다 지치면 뜨끈한 국물 한 잔으로 속을 데우기 좋습니다.

씨앗호떡 — 구운 호떡 속에 견과류를 듬뿍 넣은 부산의 길거리 별미
씨앗호떡 — 구운 호떡 속에 견과류를 듬뿍 넣은 부산의 길거리 별미사진 seul5167 · CC0 · Wikimedia Commons

부산어묵 — 간식이자 반찬

부산을 말할 때 어묵을 빼면 섭섭합니다. 생선살을 곱게 갈아 반죽해 튀기거나 쪄 낸 부산어묵은, 따뜻한 국물에 꽂아 먹는 간식이자 집집의 반찬으로 오래 사랑받아 왔습니다. 시장과 거리 곳곳에서 갓 만든 어묵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채로 팝니다.

요즘은 어묵이 한층 다양해졌습니다. 고로케처럼 속을 넣어 튀긴 어묵, 빵집처럼 꾸민 어묵 베이커리까지 생겨나, 부산 여행의 기념품으로 어묵을 사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추운 날 길에서 호호 불며 먹는 어묵 한 꼬치와 뜨끈한 국물은, 그 자체로 부산의 겨울 풍경입니다.

부산어묵 — 생선살을 반죽해 부쳐 낸 어묵 요리
부산어묵 — 생선살을 반죽해 부쳐 낸 어묵 요리사진 phototram · CC BY 2.0 · Wikimedia Commons

동래파전과 향토 음식

조금 더 깊은 부산의 맛을 찾는다면 동래파전이 있습니다. 쪽파와 해물을 듬뿍 넣어 도톰하게 부친 향토 음식으로,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해 비 오는 날 막걸리와 특히 잘 어울립니다. 옛 동래 지역에서 전해 내려온 음식이라 이름에도 그 내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 밖에도 낙동강 하구에서 나던 재첩으로 끓인 재첩국, 매콤한 낙지볶음처럼 지역색이 또렷한 음식이 많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재료와 손맛이 살아 있는 이런 음식들이, 관광지 너머 부산 사람들의 진짜 밥상을 보여 줍니다.

빵과 카페 — 또 다른 부산의 맛

부산은 빵으로도 이름난 도시입니다. 오래된 빵집들이 저마다 간판 상품을 두고 경쟁해 왔는데, 단팥빵과 크림빵 같은 기본 빵부터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으로 알려진 메뉴까지 종류가 다양합니다. 여행 선물로 빵을 한 아름 사 가는 사람도 많습니다.

전포동 카페 거리는 낡은 공구상가 골목이 개성 있는 카페촌으로 바뀐 곳으로, 부산 젊은이들이 즐겨 찾습니다. 든든히 식사한 뒤 바다나 골목이 보이는 카페에서 차 한 잔으로 쉬어 가면, 먹거리 여행의 마무리가 한결 여유로워집니다.

어디서 먹을까 — 시장과 골목

부산 음식은 권역마다 모이는 자리가 다릅니다. 돼지국밥은 서면과 범일동의 국밥골목이, 회와 곰장어는 자갈치시장이, 길거리 주전부리는 남포동 BIFF광장과 부평깡통시장이 중심입니다. 저녁이면 부평깡통야시장에 다양한 먹거리 노점이 늘어서, 한자리에서 여러 가지를 맛보기 좋습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가게보다 현지 손님이 섞여 있는 집이 대체로 무난합니다. 한 끼를 거하게 먹기보다, 여러 가게를 조금씩 돌며 다양한 맛을 보는 편이 부산 먹거리 여행에는 더 잘 어울립니다.

부산역과 가까운 초량 일대에는 옛 화교들이 자리 잡으며 생긴 차이나타운과 오래된 노포가 모여 있어, 색다른 한 끼를 찾는 이들이 즐겨 들릅니다. 어느 동네든 그 자리에서 오래 장사한 가게를 찾으면, 화려한 간판보다 정직한 맛으로 부산 음식의 진짜 얼굴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집니다.

알아두면 좋은 것

부산은 먹거리가 권역에 흩어져 있으니, 동선을 짤 때 그 동네의 대표 음식을 한 끼씩 끼워 넣으면 자연스럽습니다. 해운대에서는 바다를, 서면에서는 돼지국밥을, 남포동에서는 길거리 주전부리를 즐기는 식입니다. 인기 가게는 식사 때 줄이 기니, 조금 이른 시간에 움직이면 기다림을 줄일 수 있습니다.

회처럼 시세로 파는 음식은 주문 전에 값을 확인하고, 시장 음식은 양과 가격을 미리 물어보면 마음이 편합니다. 든든히 먹은 뒤에는 영도와 전포동의 카페 거리에서 차 한 잔으로 쉬어 가도 좋습니다. 부산은 한 끼 한 끼가 곧 여행이 되는 도시입니다.

부산의 음식은 거창한 상차림이 아니라, 항구와 시장과 골목에서 자란 정직한 한 그릇입니다. 진한 돼지국밥으로 속을 데우고, 시원한 밀면으로 더위를 식히고, 길거리 호떡으로 입을 달래는 하루 — 그렇게 한 끼씩 따라가다 보면, 부산이라는 도시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자연스럽게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