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서남쪽 끝, 서해를 등진 고창에는 산과 절과 오래된 돌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도솔산 자락에는 천 년을 이어 온 큰 절 선운사가 도솔천을 끼고 앉아 있고, 읍내 가까운 산자락에는 청동기 사람들이 남긴 고인돌 사백여 기가 한곳에 모여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가을이면 도솔천을 따라 단풍이 물들고, 9월이면 길가에 꽃무릇이 붉게 피며, 절 둘레에는 육백 년을 산 소나무 장사송이 서 있습니다. 서해안의 조용한 고장이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연과 오래된 이야기가 겹쳐 드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고창을 얼마나 많이 보느냐보다, 선운산과 고인돌을 어떤 순서로 잇느냐를 앞에 둡니다. 도솔천을 따라 절과 마애불을 걷는 산의 걸음이 있고, 사백여 기의 고인돌 사이를 지나는 오래된 걸음이 있습니다. 고창의 하루는 이 두 걸음을 어떻게 엮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여행이 됩니다.
서해를 등진 조용한 고장이지만, 도솔천 단풍길과 사백여 기의 고인돌은 다가설수록 깊어집니다.
고창은 어떤 여행지일까?
고창은 전북에서도 서남쪽 끝, 서해안고속도로가 지나는 길목에 자리한 고장입니다. 큰 도시의 번잡함 대신, 낮은 산과 넓은 들녘·갯벌이 어우러진 조용한 풍경이 이어집니다. 여행의 중심은 크게 둘로 나뉩니다. 북서쪽에는 선운산 도립공원과 그 품에 안긴 선운사가 있고, 읍내 가까이에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 유적과 조선 시대 성곽인 고창읍성이 있습니다.
고창은 또한 판소리의 고장으로도 이름납니다. 판소리를 여섯 마당으로 정리한 동리 신재효가 이곳 사람이라, 읍내에는 그를 기리는 판소리박물관이 있습니다. 여기에 봄이면 들녘을 채우는 청보리, 선운사 앞 인천강에서 올라오는 풍천장어와 복분자까지 더해져, 고창은 자연과 문화와 먹거리가 고루 어우러진 고장이 됩니다.
| 중심 | 선운산·선운사(북서쪽)와 고인돌 유적·고창읍성(읍내) |
|---|---|
| 자연 | 도솔천 단풍길, 9월 꽃무릇, 봄 동백과 청보리 |
| 세계유산 | 한곳에 모인 400여 기의 고창 고인돌 유적 |
| 먹거리 | 선운사 앞 풍천장어와 복분자, 고창 수박·땅콩 |
선운사, 천년 세월을 품은 선운산의 큰 절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때인 6세기 후반, 검단선사가 세웠다고 전해지는 오래된 절입니다. 도솔산이라고도 불리는 선운산 자락에 도솔천을 끼고 앉아, 한때 여러 암자를 거느린 큰 절이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절로 드는 길부터가 여행의 시작인데, 도솔천 물소리와 우거진 숲, 계절마다 다른 빛깔이 발걸음을 천천히 붙듭니다.
절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드는 것이 대웅보전입니다. 조선 시대에 다시 지은 이 법당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낮게 앉은 지붕과 오랜 세월이 밴 단청이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습니다. 대웅전 뒤로는 삼천 그루가 넘는 동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4월이면 붉은 동백이 절 뒤편을 가득 물들입니다.
대웅보전과 육층석탑, 선운사에서 놓치지 말 것
대웅보전 앞마당 한가운데에는 육층석탑이 서 있습니다. 여러 층의 지붕돌을 차곡차곡 쌓아 올린 이 탑은, 화려하지 않지만 절 마당의 중심을 잡아 주는 오래된 이정표 같은 자리입니다. 법당 문이 열려 있을 때 안을 들여다보면, 금동으로 빛나는 불상과 그 뒤로 화려하게 그려진 후불탱화가 어두운 법당 안에서 은은하게 빛납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철에 선운사를 찾으면, 절 마당은 또 다른 풍경으로 바뀝니다. 대웅전과 석탑 사이로 오색 연등이 줄줄이 걸려 하늘을 가리듯 이어지고, 그 아래를 걷는 걸음마다 색색의 그늘이 드리웁니다. 오래된 전각과 석탑, 산자락의 초록과 연등의 원색이 어우러진 모습은 선운사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천왕문 사천왕상과 오색 연등
선운사로 드는 길목에는 천왕문이 있습니다. 문 양옆에는 절을 지키는 사천왕상이 험상궂은 얼굴로 버티고 서 있는데, 부릅뜬 눈과 알록달록한 갑옷, 손에 든 칼과 용이 어찌나 생생한지 어린아이들은 흠칫 놀라기도 합니다. 이 무서운 수문장들은 절 안으로 나쁜 것이 들지 못하게 막아 준다는 의미를 지녀, 오래된 절마다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천왕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앞서 본 연등이 다시 눈에 듭니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면 노랑·파랑·빨강·초록의 연등이 층층이 겹쳐 하늘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소원을 적은 종이가 아래로 늘어져 바람에 흔들립니다. 화려한 색의 물결 사이로 파란 하늘이 조각조각 비치는 모습은, 사진으로 남기기에도 좋은 선운사의 명장면입니다.
도솔천 단풍길과 도솔암 마애불
선운사에서 도솔암까지 이어지는 도솔천 길은 고창 여행의 백미입니다. 절을 나와 계곡을 따라 완만하게 오르는 이 길은, 편도 40분 안팎이면 닿을 만큼 부담이 적으면서도 계절마다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특히 10월 말에서 11월 초, 도솔천 물 위로 단풍이 비쳐 물빛까지 붉게 물드는 풍경은 전국의 사진가들이 찾아올 만큼 이름나 있습니다.
도솔천을 거슬러 오르면 벼랑 아래 도솔암이 나오고, 그 곁 절벽에는 커다란 마애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고려 시대에 바위에 직접 새긴 이 거대한 불상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데, 가슴에 얽힌 오래된 이야기와 함께 오랜 세월 이 골짜기를 지켜 왔습니다. 마애불 위쪽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올라앉은 작은 법당 내원궁까지 오르면, 도솔천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 9월 중순이면 일주문에서 선운사로 이어지는 길가에 붉은 꽃무릇이 무리 지어 피어, 초록 숲과 대비를 이룹니다.
- 10월 말~11월 초에는 도솔천을 따라 단풍이 절정에 이르러, 물 위에 비친 단풍까지 붉게 물듭니다.
- 도솔암 벼랑의 마애불은 고려 때 바위에 새긴 거대한 불상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마애불 위 벼랑에 올라앉은 작은 법당 내원궁에서는 도솔천 골짜기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장사송과 진흥굴, 육백 년을 산 소나무
도솔암 가는 길목에는 선운산을 대표하는 오래된 나무 장사송이 서 있습니다. 수령이 육백 년에 이른다고 전해지는 이 소나무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곧게 뻗은 줄기가 어른 키의 몇 배 높이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 우산처럼 넓게 퍼지는데, 뒤편 암벽과 어우러진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아 지나는 이들의 발길을 붙듭니다.
장사송 바로 곁에는 진흥굴이라는 자연 동굴이 있습니다. 신라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이곳에 들어와 수도했다는 전설이 깃든 굴로, 어른이 허리를 펴고 들어갈 만한 크기입니다. 굴 안에 들어서면 서늘한 공기와 어둠 속에서 바깥의 초록이 한결 눈부시게 보입니다. 육백 년 된 소나무와 전설이 깃든 동굴이 나란히 놓인 이 자리는, 도솔천 길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하는 곳입니다.
고창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
선운산에서 차로 20분쯤 떨어진 고창읍 가까이에는, 성격이 전혀 다른 볼거리인 고인돌 유적이 있습니다. 죽림리와 상갑리 일대 산자락에 크고 작은 고인돌 400여 기가 한곳에 모여 있는데, 이렇게 촘촘하게 밀집한 고인돌 분포지는 세계적으로도 드뭅니다.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0년, 화순·강화의 고인돌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고인돌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이 남긴 무덤이자 기념물입니다. 커다란 덮개돌을 받침돌 위에 올린 탁자식, 낮은 받침 위에 덮개돌을 얹은 바둑판식 등 종류가 다양해, 탐방로를 걸으며 서로 다른 모양을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먼저 고인돌박물관에서 청동기 사람들의 삶과 고인돌을 만든 방법을 살펴보고 탐방로로 나서면, 들판에 놓인 돌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옵니다.
선운산 자락의 녹차밭과 고창의 들녘
선운산 둘레로는 낮은 구릉을 따라 녹차밭이 펼쳐진 곳이 있습니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과 산자락의 안개가 차를 기르기에 알맞아, 가지런한 초록 이랑이 물결처럼 이어집니다. 차밭 한가운데 놓인 작은 정자에 서면, 짙은 숲과 초록 차밭이 겹쳐 든 풍경이 고요하게 다가옵니다. 절과 산을 걷다 잠시 눈을 쉬어 가기 좋은 자리입니다.
고창은 들녘의 고장이기도 합니다. 봄이면 청보리가 들판을 초록으로 물들이고, 여름이면 서해 갯벌과 논이 넓게 펼쳐집니다. 이런 땅에서 자란 고창 수박과 땅콩, 그리고 선운사 앞 인천강에서 올라오는 풍천장어는 고창을 대표하는 먹거리입니다. 장어를 구워 복분자주 한 잔을 곁들이는 것은, 선운산을 걷고 난 여행자들이 빼놓지 않는 고창의 맛입니다.
고창, 언제 어떻게 걸으면 좋을까?
고창 여행은 선운산과 고인돌을 하루에 어떻게 잇느냐에서 시작합니다. 오전에 선운사에 들어 도솔천을 따라 도솔암·마애불·장사송까지 걷고, 오후에 고인돌 유적과 박물관을 돌면 산과 절과 세계유산을 하루에 담을 수 있습니다. 두 곳이 차로 20분 안팎이라 자차나 택시로 이으면 동선이 깔끔하고, 여유가 있다면 고창읍성과 판소리박물관까지 더해 읍내를 둘러봐도 좋습니다.
철에 따라 고창은 전혀 다른 고장이 됩니다. 9월 중순이면 선운사 길가에 붉은 꽃무릇이 피고, 10월 말이면 도솔천이 단풍으로 물들며, 봄에는 동백과 청보리가 산과 들을 채웁니다. 걷다 출출해지면 선운사 앞 풍천장어와 복분자로 든든히 챙기기 좋습니다. 단풍철과 꽃무릇철에는 사람이 크게 몰리니, 이른 아침에 찾거나 붐비는 철을 살짝 비켜 가면 한결 여유롭게 선운산과 고인돌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방문 전 고창군 문화관광에서 축제 기간과 탐방로 안내를 확인하면 헛걸음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