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진안 한복판에는 말의 귀를 닮은 두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 있습니다. 멀리 고속도로에서 보면 안개 속에 뾰족한 두 뿔이 떠 있고, 가까이 다가서면 자갈이 뭉쳐 굳은 거대한 역암 벼랑이 하늘을 가릴 듯 올려다보입니다. 이 산이 마이산(馬耳山)입니다. 두 봉우리 사이 골짜기에는 백 년 전 한 사람이 쌓았다는 탑사의 돌탑이 숲을 이루고, 그 위로 태조 이성계의 전설이 깃든 은수사, 벼랑 아래 단청 고운 금당사가 이어집니다. 세계적으로도 드문 지형과 오래된 이야기가 한 골짜기에 겹쳐 드는, 진안고원의 명산입니다.
그래서 이 글은 마이산을 얼마나 높이 오르느냐보다, 두 봉우리와 골짜기의 사찰을 어떤 이야기로 걷느냐를 앞에 둡니다. 역암 벼랑 아래에 서서 지형을 올려다보는 걸음이 있고, 골짜기를 메운 돌탑의 숲을 지나는 걸음이 있으며, 봉우리 아래 오래된 절에서 전설을 되짚는 걸음이 있습니다. 마이산의 하루는 이 걸음을 어떻게 잇느냐에 따라 사뭇 다른 산이 됩니다.
멀리서는 말의 두 귀, 가까이서는 하늘을 가리는 역암 벼랑 — 마이산은 다가설수록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마이산, 왜 말의 귀를 닮았다고 할까?
마이산은 이름 그대로 말의 귀를 닮은 산입니다. 진안 들녘에 나란히 솟은 두 봉우리가 마치 커다란 말이 귀를 쫑긋 세운 모습과 같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동쪽의 조금 낮고 뾰족한 봉우리를 수마이봉, 서쪽의 크고 둥근 봉우리를 암마이봉이라 부릅니다. 두 봉우리 모두 해발 680m 안팎으로, 진안고원이라는 높은 땅 위에 솟아 실제 산세보다 한결 우뚝해 보입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봉우리를 이룬 돌입니다. 마이산은 화강암이나 편마암이 아니라, 강자갈과 모래가 뭉쳐 굳은 역암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래전 이곳이 커다란 호수 바닥이었을 때 쌓인 자갈층이 땅이 솟으며 봉우리가 되었다고 알려져, 이런 규모의 역암 봉우리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힙니다. 벼랑에 다가서면 벽면에 콕콕 박힌 둥근 자갈과, 벌집처럼 움푹 팬 풍화 구멍이 눈에 가득 들어옵니다.
| 생김새 | 진안고원에 솟은 두 암봉, 말의 귀를 닮은 암마이봉·수마이봉 |
|---|---|
| 지질 | 자갈이 뭉쳐 굳은 역암 봉우리 — 세계적으로 드문 지형 |
| 볼거리 | 봉우리·탑사 돌탑·은수사·금당사·이산묘가 한 골짜기에 |
| 뚜벅이 | 전주에서 차로 40분, 진안 터미널에서 버스·택시 |
두 봉우리는 계절마다 이름이 바뀌었다?
마이산이 각별한 것은 계절마다 다른 이름으로 불려 왔다는 점입니다. 옛사람들은 봄에 안개 속에 돛대처럼 솟은 모습을 보고 돛대봉, 여름에 짙은 녹음이 봉우리를 감싸면 용의 뿔 같다 하여 용각봉, 가을에 단풍 든 두 귀를 마이봉, 겨울에 눈 덮인 봉우리가 붓끝 같다 하여 문필봉이라 불렀습니다. 같은 산을 두고 철마다 이름을 달리한 것은, 그만큼 봉우리의 표정이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봉우리를 제대로 보려면 어디서 보느냐도 중요합니다. 진안 들녘에서 멀찍이 바라보면 두 귀가 가지런히 솟은 전형적인 마이산의 모습이고, 북부 전망대에 오르면 두 봉우리를 눈높이에서 마주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남부 골짜기로 들어가 봉우리 바로 아래에 서면, 하늘을 가릴 듯한 역암 벼랑의 위압이 온몸으로 다가옵니다. 멀리서 보는 마이산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마이산은 전혀 다른 산처럼 느껴집니다.
탑사, 백 년 전 한 사람이 쌓은 돌탑의 숲
두 봉우리 사이 골짜기 가장 깊은 곳에 탑사(塔寺)가 있습니다. 절을 찾은 이들이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법당이 아니라, 골짜기를 가득 메운 돌탑들입니다. 크고 작은 돌탑 80여 기가 벼랑 아래로 숲처럼 늘어서 있는데, 어떤 것은 사람 키를 훌쩍 넘고, 어떤 것은 원뿔 모양으로 두 개가 마주 서 있습니다. 이 원뿔 쌍탑이 탑사에서 가장 이름난 천지탑입니다.
이 돌탑들은 조선 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이갑룡 처사라는 한 사람이 평생에 걸쳐 쌓았다고 전해집니다. 놀라운 것은 시멘트 같은 접착제 없이 자연석만 정교하게 괴어 올렸는데도, 백 년 넘게 회오리바람과 폭우를 견디며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골짜기로 바람이 몰아쳐도 돌탑은 흔들릴 뿐 쓰러지지 않는다 하여, 그 자체가 오랜 세월 이야깃거리가 되어 왔습니다.
이갑룡 처사는 왜 평생 돌탑을 쌓았을까?
탑사 한편에는 돌탑을 쌓은 이갑룡 처사의 석상이 있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앉은 노인의 모습으로, 그가 30여 년 동안 이 골짜기에서 돌을 나르고 탑을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한 사람이 맨손으로 이만한 탑의 숲을 이루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골짜기를 걷는 걸음이 예사롭지 않아집니다. 석상 곁에는 그를 기리는 안내와 소박한 제단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돌탑 가운데 일부는 굴이나 바위 아래 자리해, 안쪽에 작은 불상을 모시기도 했습니다. 벼랑 밑 그늘에 촛불이 켜지고 돌탑이 둘러선 자리는, 절의 법당과는 또 다른 기도의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돌탑 하나하나가 어떤 정성으로 세워졌는지 떠올리며 천천히 걸으면, 탑사의 골짜기가 단순한 볼거리 이상의 무게로 다가옵니다.
은수사, 태조의 전설과 청실배나무
탑사에서 계단길로 조금 더 오르면 암마이봉 바로 아래에 은수사가 있습니다. 거대한 역암 벼랑을 병풍처럼 등지고 앉은 이 절은, 이름부터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조선을 연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샘물을 마셨는데 물이 은처럼 맑았다 하여 은수사(銀水寺)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절 마당에 서면 바로 위로 암마이봉의 벼랑이 압도적으로 솟아, 봉우리를 가장 가까이서 올려다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은수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청실배나무가 있습니다. 태조가 이곳에 들러 심었다는 전설이 깃든 나무로, 봄이면 흰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습니다. 또 하나 이름난 것은 겨울 정화수 이야기입니다. 추운 날 절 마당에 떠 놓은 정화수가 얼면서 고드름이 위로 솟는다고 전해져, 이 신기한 현상을 보러 겨울에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다만 날씨와 기온에 따라 생기는 자연 현상이라 늘 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은수사 뜰에서 만나는 용왕과 돌부처
은수사 마당을 천천히 돌면, 벼랑 아래 곳곳에 놓인 석상과 조각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꽃을 든 관음석상이 단정하게 서 있고, 그 곁에는 물을 다스린다는 용왕을 형상화한 청동 조각이 놓여 산속 절의 정성을 보여 줍니다. 화려하게 꾸민 큰 사찰과 달리, 은수사는 벼랑과 나무 사이사이에 소박한 조각을 들여 골짜기 절 특유의 아늑함을 지닙니다.
절 앞으로는 두 봉우리를 잇는 천황문 방향으로 길이 이어져, 은수사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두 봉우리 사이 안부에 닿습니다. 시간과 체력이 되는 이라면 여기서 암마이봉 정상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길에 도전하기도 합니다. 다만 정상 등반은 본격적인 산행이니, 은수사까지만 올라 봉우리를 가까이 마주하는 것으로도 마이산의 참모습을 넉넉히 담을 수 있습니다.
금당사, 벼랑 아래 단청 고운 절
마이산 남부 들머리, 벚꽃길이 시작되는 어귀에는 금당사가 있습니다. 탑사·은수사가 골짜기 깊은 곳에 자리한 것과 달리, 금당사는 남부주차장에서 가까워 마이산에 들고 날 때 자연스레 마주치는 절입니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단청이 유난히 곱기로 이름나, 붉은 기둥과 화려한 문살, 연꽃과 용을 그려 넣은 처마가 여행자의 눈길을 오래 붙잡습니다.
금당사에는 나무로 만든 금동관음보살상과, 큰 법회 때 내거는 거대한 불화 괘불탱이 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벼랑을 등지고 앉은 아담한 절이지만, 오래된 유물과 정성 들인 단청이 어우러져 마이산 여행의 시작이나 마무리를 차분하게 채워 줍니다. 벚꽃 철이면 절 앞으로 이어지는 꽃길이 더없이 화사해, 봄에 마이산을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는 자리입니다.
이산묘, 나라를 지킨 이들을 기리는 자리
남부 들머리에는 사찰과 성격이 사뭇 다른 이산묘(駬山廟)도 있습니다. 이곳은 부처를 모신 절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애쓴 이들을 기리는 사당이자 서원입니다. 조선의 임금들과 함께, 을사·경술년의 국권 침탈에 맞서 싸운 순국지사와 항일 의병을 기리는 자리로, 마이산 자락의 조용한 숲 속에 단정한 한옥 건물들이 들어서 있습니다.
화려한 볼거리를 좇는 이에게는 스쳐 지나기 쉬운 곳이지만, 마이산이 빼어난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뜻도 함께 품은 산임을 보여 주는 자리입니다. 기와지붕을 인 서원 건물과 마당을 천천히 걸으며, 봉우리 아래에서 나라를 생각하던 이들의 마음을 잠시 되짚어 보는 것도 마이산 여행의 또 다른 재미가 됩니다. 두 봉우리와 돌탑을 본 뒤 이곳까지 이으면, 마이산의 하루가 한층 깊어집니다.
마이산, 언제 어떻게 걸으면 좋을까?
마이산 여행은 남부와 북부 가운데 어디로 들지 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탑사·은수사·금당사·이산묘와 봄 벚꽃길을 걸을 계획이라면 남부주차장이 편하고, 두 봉우리를 눈높이에서 조망하거나 암마이봉에 오르려면 북부주차장이 가깝습니다. 두 봉우리와 골짜기의 사찰을 두루 걷는 것만으로도 반나절이 알차게 차니, 정상 등반까지 욕심내지 않는다면 남녀노소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습니다.
철에 따라 마이산은 전혀 다른 산이 됩니다. 봄이면 남부의 벚꽃길이 흐드러지고, 여름이면 역암 벼랑을 짙은 신록이 감싸며, 가을이면 골짜기가 단풍으로 물들고, 겨울이면 눈을 인 두 봉우리가 고원 위로 또렷합니다. 걷다가 출출해지면 진안의 향토 음식인 흑돼지와 애저, 고원에서 자란 인삼·홍삼을 챙기기 좋습니다. 벚꽃 축제 기간과 주차장 운영, 탐방로 통제는 철마다 바뀌니, 진안군 문화관광에서 미리 확인하면 헛걸음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