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은 동해를 마주한 바닷가 도시이면서, ‘커피의 도시’라는 이름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넓은 백사장과 잔잔한 석호, 해가 가장 먼저 닿는 기차역, 바다를 바라보고 앉은 카페가 한 도시 안에 모여 있습니다. 여기에 율곡 이이가 태어난 옛 한옥과 바닷물로 굳힌 순두부까지 더해지니, 바다 하나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까운 곳입니다. 커피로 아침을 열고 해변과 호수를 차례로 걷다가, 해 질 무렵 도심의 다리 위에서 하루를 닫는 흐름으로 잡으면 강릉의 여러 얼굴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무엇이 어디에 있는지 한 번만 그려 두면, 멀리 떨어진 명소 사이에서 길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안목 커피거리 — 자판기에서 로스터리까지

강릉 여행의 첫 일정으로는 안목해변(강릉항) 일대의 커피거리가 잘 어울립니다. 지금은 직접 원두를 볶는 로스터리 카페가 줄지어 선 거리지만, 시작은 소박했습니다. 예전 바닷가에 놓인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사람들이 모이던 자리가, 입소문을 타며 카페거리로 자라났습니다. 강릉이 해마다 커피 축제를 여는 도시가 된 데에는 이런 내력이 깔려 있습니다.

거리에 들어서면 가게마다 원두 볶는 향이 흘러나오고, 통유리 너머로 바다가 그대로 들어옵니다. 모래사장에 놓인 커다란 커피잔 조형물은 강릉 바다의 상징처럼 사진 자리로 인기입니다. 자리에 앉아 파도를 보며 한 잔을 비우는 것만으로 강릉에 온 이유가 채워집니다. 주말과 성수기 낮에는 바다가 보이는 창가 자리가 빠르게 차니, 한적하게 즐기려면 이른 오전을 노리는 편이 낫습니다.

안목해변 — 바닷가에 놓인 커피잔 조형물이 강릉 커피의 상징이 되었다
안목해변 — 바닷가에 놓인 커피잔 조형물이 강릉 커피의 상징이 되었다사진 Mobius6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경포 — 바다와 호수를 한자리에

경포해변은 강릉을 대표하는 넓은 백사장입니다. 여름이면 해수욕장으로 붐비지만, 사람이 적은 계절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을 따라 걷기 좋습니다. 바로 안쪽에는 바다와 모래언덕에 막혀 생긴 석호 경포호가 자리합니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닦여 있어, 바다의 시원함과 호수의 잔잔함을 한자리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호숫가 언덕의 정자 경포대는 예부터 관동의 이름난 누각으로 꼽혀 왔습니다. 정자에 오르면 호수와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보름달은 오래전부터 강릉의 손꼽히는 풍경이었습니다. 가까이에는 조선의 여성 문인 허난설헌의 생가 터가 있어, 호수 산책에 슬쩍 엮기 좋습니다. 봄이면 호수를 두른 벚꽃길이 장관을 이루고, 가을에는 둘레의 단풍이 물에 비쳐 다른 얼굴을 냅니다.

정동진 —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

해돋이를 빼놓을 수 없다면 정동진으로 향합니다. 정동진역은 철길이 바다와 거의 맞닿아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플랫폼에 서면 선로 너머로 바로 파도가 부서집니다. 역 언덕 위에는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난 모래시계 공원과, 배 모양으로 지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전망대가 함께 있어 묶어 보기 좋습니다.

다만 해돋이는 그날의 일출 시각과 날씨에 크게 좌우됩니다. 구름이 두꺼우면 해가 늦게 모습을 드러내거나 끝내 가려지기도 하니, 일출 시각을 미리 확인하고 30분쯤 여유 있게 도착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겨울 바닷바람은 매서워 두툼한 옷차림이 필수입니다. 해를 본 뒤에는 정동진에서 심곡항으로 이어지는 바다부채길을 권합니다. 오랜 세월 바다가 깎아 만든 해안 절벽을 따라 놓인 길이라, 동해의 또 다른 얼굴을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정동진역 — 바다와 거의 맞닿은 기차역으로,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정동진역 — 바다와 거의 맞닿은 기차역으로, 해돋이 명소로 알려져 있다사진 Showtime2027 · CC BY-SA 3.0 · Wikimedia Commons

주문진 — 회와 바닷가 풍경

갓 잡은 해산물을 제대로 맛보고 싶다면 항구 마을 주문진이 강합니다. 수산시장과 횟집이 모여 있어, 그날 들어온 생선과 조개를 눈으로 고를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산 회를 가까운 상가에서 상차림과 함께 먹는 방식도 흔합니다. 다만 회·물회처럼 값이 시세로 정해지는 메뉴는 주문 전에 가격을 묻는 습관이 헛걸음을 줄여 줍니다.

주문진은 사진으로도 이름이 났습니다. 해변의 한 바닷가 버스정류장은 뮤직비디오에 등장한 뒤로,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남기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사람에 떠밀리지 않고 바다를 즐기고 싶다면, 항구 끝의 빨간 등대와 한적한 향호해변까지 걸어 보세요. 같은 바다라도 사뭇 차분합니다.

주문진 — 항구 마을의 해변. 바닷가 버스정류장이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다
주문진 — 항구 마을의 해변. 바닷가 버스정류장이 사진 명소로 알려져 있다사진 Mobius6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초당 순두부마을 — 바닷물로 굳힌 두부

강릉의 식탁을 이야기할 때 초당 순두부를 빼기 어렵습니다. 바닷물을 간수로 써서 굳힌 부드러운 순두부로, 이 방식으로 이름난 동네가 초당마을입니다. 두부에 붙은 ‘초당’이라는 이름은 이 마을에 살던 조선시대 문인 허엽의 호에서 왔다고 전해집니다. 허난설헌·허균 남매의 아버지이니, 경포에서 본 허난설헌의 자취가 이 한 그릇에도 이어지는 셈입니다.

갓 만들어 김이 오르는 순두부 한 그릇은 담백하고 고소해, 아침 식사로도 속이 편합니다. 양념장에 슴슴하게 먹다가 칼칼한 짬뽕순두부로 넘어가도 좋고, 두부로 만든 젤라토처럼 변형 메뉴도 늘어 골라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마을 안에 순두부집이 모여 있어, 한 끼를 위해 멀리 돌지 않아도 됩니다.

오죽헌과 선교장 — 옛 강릉

바다와 커피만이 강릉의 전부는 아닙니다. 오래된 강릉을 보고 싶다면 오죽헌선교장을 더합니다. 오죽헌은 율곡 이이가 태어난 집이자 어머니 신사임당의 자취가 남은 곳으로, 우리나라에 남은 오래된 살림집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집을 두른 검은 대나무, 곧 오죽(烏竹)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마당 안쪽 율곡을 모신 사당 문성사까지 둘러보면 한 인물의 자취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선교장은 조선시대 사대부의 살림집이 큰 규모로 남은 한옥입니다. 너른 마당과 줄지어 선 행랑채, 연못 위에 앉은 정자 활래정이 단정합니다. 오가는 손님이 끊이지 않던 집답게 규모가 넉넉해, 천천히 거닐며 옛 살림의 모습을 더듬기 좋습니다.

오죽헌 —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사진은 율곡을 모신 문성사
오죽헌 —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 사진은 율곡을 모신 문성사사진 User:Altostratus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

강릉에서 무엇을 먹을까

강릉의 먹거리는 바다와 산자락에 고루 걸쳐 있습니다. 앞서 본 초당 순두부가 대표 주자라면, 바닷가에서는 새콤하게 말아낸 물회와 갓 잡은 가 기다립니다. 여름이면 초당옥수수가 제철을 맞아, 삶기만 해도 단맛이 진합니다.

소박한 향토 음식도 강릉다운 한 끼입니다. 감자 녹말 반죽을 떼어 넣어 끓인 감자옹심이와 메밀 막국수는 화려하지 않아도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을 먹든 식사 뒤 안목의 커피 한 잔으로 마무리하면 강릉다운 동선이 완성됩니다. 가격과 제철, 시세가 정해지는 메뉴는 늘 그렇듯 방문 전 확인이 안전합니다.

한 걸음 더 — 산과 바다 사이

하루가 더 있다면 강릉만 보고 돌아가기엔 아쉽습니다. 서쪽으로 차를 몰면 대관령이 가깝습니다.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풍경과 양 떼가 풀을 뜯는 목장은, 바다와는 전혀 다른 고원의 색깔을 보여 줍니다. 별을 보기로 이름난 안반데기의 고랭지 밭도 이 일대입니다.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속초·양양이 이어져, 바다를 더 보고 싶을 때 묶기 좋습니다. 강릉을 가운데 두고 산과 바다 어느 쪽으로든 한 걸음 더 디딜 수 있습니다.

가는 법과 다니는 법

서울에서는 KTX로 강릉역까지 두 시간 안팎이면 닿습니다. 역에서 시내와 안목·경포는 시내버스나 택시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명소가 서로 멀다는 점입니다. 안목·경포·정동진·주문진·오죽헌은 한 도시 안에 있어도 거리가 떨어져 있어, 여러 곳을 하루에 묶으려면 차가 있으면 훨씬 수월합니다.

대중교통만으로 다닌다면 동선을 한쪽으로 모으는 편이 좋습니다. 무엇보다 정동진은 기차로 가는 길 자체가 운치 있으니, 강릉역에서 정동진행 기차 시간표를 함께 확인하면 해돋이 일정을 짜기 수월합니다. 차를 가져온다면 명소마다 주차장이 있지만, 여름 성수기 경포·안목 일대는 자리 경쟁이 치열하니 이른 시간을 노리는 편이 낫습니다.

언제, 어떻게 가면 좋을까

강릉은 사철 다른 얼굴을 보여 줍니다. 여름은 해수욕과 초당옥수수, 봄가을은 산책과 카페, 겨울은 해돋이와 김 오르는 순두부가 어울립니다. 해돋이를 노린다면 일출 시각과 날씨를, 회를 노린다면 시세와 제철을 미리 살피면 같은 여행도 알차집니다.

반나절이라면 안목 커피거리와 경포해변만으로도 강릉의 분위기를 충분히 담습니다. 하루라면 여기에 초당 순두부 한 끼와 오죽헌을 더하고, 1박 2일이라면 첫날 시내와 바다를 돌아본 뒤 이튿날 새벽 정동진 해돋이로 여행을 매듭짓는 흐름을 권합니다. 어느 코스든 무리해서 다 보려 하기보다 바다 한 곳에 오래 머무는 편이, 강릉을 더 오래 기억하게 합니다. 일정의 마지막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남대천 월화교 위에서 저무는 하늘을 보는 것으로 채워도 좋습니다.

남대천 — 강릉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 월화교 위에서 보는 저녁 하늘이 곱다
남대천 — 강릉 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 월화교 위에서 보는 저녁 하늘이 곱다사진 Basile Morin · CC BY-SA 4.0 ·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