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은 백제의 세 번째 왕도입니다. 공주와 부여는 백제 하면 곧바로 떠오르는데, 익산은 같은 백제역사유적지구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올랐는데도 이름값은 훨씬 작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 보면 익산 쪽이 더 넉넉합니다. 미륵사지는 백제가 남긴 절터 가운데 가장 크고, 왕궁리에는 왕궁 자리가 통째로 드러나 있으며, 두 곳 모두 입장료가 없습니다. 사람도 부여·공주보다 훨씬 적습니다. 이 글은 명소를 하나씩 늘어놓기보다, 흩어진 유적을 왔던 길을 두 번 밟지 않고 잇는 순서를 먼저 그립니다.

익산, 왜 부여·공주와 따로 봐야 하나

세 도시 모두 백제의 왕도였지만 남아 있는 것의 성격이 다릅니다. 공주에는 무령왕릉과 공산성이, 부여에는 부소산성과 정림사지가 있습니다. 무덤과 성이 중심이지요. 반면 익산에 남은 것은 절터와 왕궁터입니다. 건물은 사라지고 주춧돌과 석탑, 그리고 그것들이 놓였던 너른 빈터가 남았습니다.

그래서 익산은 처음 가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화려한 전각이 늘어선 것도, 담장 안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것도 아니고, 축구장 여러 개를 붙인 듯한 잔디밭에 석탑 하나가 덩그러니 서 있습니다. 하지만 그 빈터의 크기가 곧 백제 후기의 규모입니다. 안내판에 그려진 배치도를 한 번 읽고 나면 그 빈 잔디밭이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륵사지 입구의 안내판 — 백제역사유적지구 설명과 절터 배치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배치도를 먼저 읽으면 빈터가 다르게 보인다
미륵사지 입구의 안내판 — 백제역사유적지구 설명과 절터 배치도가 나란히 서 있다. 이 배치도를 먼저 읽으면 빈터가 다르게 보인다

첫날 아침 — 미륵사지, 백제가 남긴 가장 큰 절터

익산역에서 차로 20분 남짓 달리면 금마면 미륵사지에 닿습니다. 주차장에서 걸어 들어가면 시야가 갑자기 트이는데, 그 순간이 이 여행의 첫 인상입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잔디밭 양 끝에 석탑 두 기가 서 있고, 그 뒤로 미륵산이 병풍처럼 둘러 있습니다.

미륵사지·국립익산박물관
입장료미륵사지 무료(상시 개방) · 국립익산박물관 상설전시 무료가는 법익산역에서 차로 20분 안팎, 금마면 기양리(시내버스도 다님)소요절터 한 바퀴 1시간~1시간 30분, 박물관까지 보면 2시간 30분함께미륵사지 석탑(서탑)·복원 동탑·당간지주·연못터·미륵산 조망팁박물관은 10시~18시, 월요일 휴관 — 절터는 아침 일찍이 사람이 가장 적음
절터가 워낙 넓어 그늘이 거의 없습니다. 여름에는 모자와 물을, 겨울에는 바람막이를 챙기는 편이 낫습니다.

미륵사는 639년에 세워졌습니다. 2009년 석탑을 해체하다가 안에서 나온 금제사리봉영기에 그 해가 적혀 있었고, 절을 세우자고 발원한 사람은 백제 좌평 사택적덕의 딸, 곧 무왕의 왕후였다고 새겨져 있었습니다. 절 하나를 세우는 데 왕실이 얼마나 큰 힘을 쏟았는지, 그 크기가 지금 잔디밭의 넓이로 남아 있는 셈입니다.

여름 미륵사지 — 복원한 동탑(오른쪽)과 다시 세운 서탑(왼쪽)이 너른 절터 양 끝에 서 있다
여름 미륵사지 — 복원한 동탑(오른쪽)과 다시 세운 서탑(왼쪽)이 너른 절터 양 끝에 서 있다
절터 안 연못 자리 — 건물은 사라지고 물과 잔디만 남아 빈터의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절터 안 연못 자리 — 건물은 사라지고 물과 잔디만 남아 빈터의 크기를 실감하게 한다

미륵사지 석탑 — 왜 20년이나 걸려 다시 세웠나

절터 서쪽에 선 석탑이 미륵사지 석탑(서탑)입니다. 지금 남아 있는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축에 들어갑니다. 일제강점기에 무너져 내린 부분을 콘크리트로 발라 놓은 채 오래 서 있었는데, 1998년부터 해체 보수에 들어가 2019년에야 다시 공개되었습니다. 스무 해가 넘게 걸린 셈입니다.

가까이 서면 이 탑이 왜 특별한지가 곧바로 눈에 들어옵니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나무로 지은 탑의 짜임새를 그대로 흉내 냈습니다. 기둥이 있고, 처마가 있고,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문까지 있습니다. 목탑에서 석탑으로 넘어가던 그 순간이 돌에 굳어 있는 것이지요. 맞은편에 선 동탑은 1993년에 발굴 결과를 바탕으로 새로 복원한 것이라, 두 탑을 나란히 보면 '천오백 년 견딘 돌'과 '오늘 다시 깎은 돌'의 색이 확연히 다릅니다.

겨울 미륵사지 — 당간지주 너머로 보수를 마친 서탑이 보인다. 깃대를 세우던 두 돌기둥도 백제 때 것이다
겨울 미륵사지 — 당간지주 너머로 보수를 마친 서탑이 보인다. 깃대를 세우던 두 돌기둥도 백제 때 것이다

탑 앞 잔디에 서 있는 길쭉한 돌기둥 두 짝은 당간지주입니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깃발을 매단 장대를 세우려고 박아 둔 받침돌인데, 이것 역시 백제 때 것입니다. 탑만 보고 지나치기 쉬운 자리라 한 번 눈여겨보길 권합니다.

빈터가 넓다는 것은 그만큼 큰 절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익산에서는 사라진 것의 크기를 남은 것으로 가늠하게 됩니다.

탑을 보고 나면 무엇을 볼까 — 국립익산박물관

절터를 다 돌았으면 그 옆에 붙은 국립익산박물관으로 들어갑니다. 2020년 1월에 문을 연 이 박물관은 건물을 땅 아래로 낮게 앉혀 절터의 경관을 가리지 않도록 지었습니다. 밖에서 보면 박물관이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입니다.

여기서 꼭 봐야 할 것이 2009년 서탑에서 나온 사리장엄구입니다. 금으로 만든 사리호와 봉영기가 실물로 놓여 있는데, 방금 절터에서 본 그 탑 안에 천사백 년 가까이 들어 있던 물건이라는 사실이 실감 나는 자리입니다. 순서를 이렇게 잡으면 — 탑을 먼저 보고 그 안에 있던 것을 나중에 보는 — 두 곳이 한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관람은 10시부터 18시까지이고 월요일에는 문을 닫습니다. 상설전시는 무료입니다. 전시 교체나 특별전 일정은 국립익산박물관 누리집에서 미리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월요일에 익산을 찾는다면 박물관 대신 야외 유적에 시간을 더 쓰는 편이 낫습니다.

여름 절터에 드러난 주춧돌들과 미륵산 — 건물이 어디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가 돌의 자리로만 남아 있다
여름 절터에 드러난 주춧돌들과 미륵산 — 건물이 어디에 얼마나 서 있었는지가 돌의 자리로만 남아 있다

첫날 점심 — 황등비빔밥과 익산의 밥상

익산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음식은 황등비빔밥입니다. 익산 황등면에서 이름이 난 비빔밥으로, 뜨거운 국물에 밥을 데워 토렴한 뒤 육회와 콩나물을 얹어 냅니다. 돌솥에 지글거리는 비빔밥과 달리 미지근하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특징입니다.

금마면 미륵사지 부근에는 산채정식이나 백반을 내는 식당이 흩어져 있고, 익산역 근처 시내로 나오면 선택지가 훨씬 넓어집니다. 동선을 생각하면 미륵사지에서 왕궁리로 넘어가는 길목에서 점심을 해결하는 편이 시간을 아낍니다. 지방 소도시라 재료가 떨어지면 일찍 닫는 집이 있으니, 늦은 점심은 미리 전화로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익산 이동 시간 짐작

구간이동한마디
익산역 → 미륵사지차로 20분 안팎시내버스도 다니나 배차가 뜸함
미륵사지 → 왕궁리유적차로 15분 안팎같은 동남쪽 권역, 점심을 이 길목에서
왕궁리 → 쌍릉·고도리차로 15~20분금마면으로 되돌아오는 짧은 구간
시내 → 나바위성당차로 30분 안팎둘째 날 서북쪽 시작점
나바위성당 → 함라마을차로 30분 안팎금강을 옆에 두고 서쪽으로

첫날 오후 — 왕궁리유적, 왕궁과 절이 겹쳐 앉은 자리

미륵사지에서 차로 15분이면 왕궁리유적입니다. 낮은 언덕 위에 오층석탑 한 기가 서 있고, 그 아래로 발굴된 건물터가 넓게 펼쳐집니다. 이곳의 재미는 성격이 다른 두 시대가 한자리에 겹쳐 있다는 점입니다. 백제 때는 왕궁이었던 자리에, 나중에 절이 들어섰습니다.

왕궁리유적
입장료무료(유적·전시관 모두)가는 법미륵사지에서 차로 15분 안팎, 왕궁면 왕궁리소요유적 산책 + 전시관 1시간~1시간 30분함께왕궁리 오층석탑(국보)·왕궁리유적전시관·발굴된 정원터와 화장실터팁언덕 위 석탑까지는 완만한 오르막 — 해 질 무렵 빛이 가장 곱게 든다
왕궁리는 백제 왕궁터라는 견해와 무왕이 세운 별궁이라는 견해가 함께 있는 자리입니다. 아직 발굴이 이어지고 있어, 갈 때마다 보이는 모습이 조금씩 달라집니다.

왕궁리가 백제의 정식 왕궁이었는지, 무왕이 따로 지은 별궁이었는지는 아직 학계에서 견해가 갈립니다. 다만 발굴에서 나온 것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왕이 거닐던 정원의 자리, 공방의 자리, 그리고 대형 화장실 유적까지 확인되었습니다. 마지막 것이 특히 흥미로운데, 화장실에 남은 흔적에서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고 어떤 기생충에 시달렸는지까지 읽어 냈습니다.

왕궁리유적 — 낮은 둔덕 위에 오층석탑이 홀로 섰다. 그 아래 잔디가 전부 발굴된 건물터다
왕궁리유적 — 낮은 둔덕 위에 오층석탑이 홀로 섰다. 그 아래 잔디가 전부 발굴된 건물터다

유적 옆 왕궁리유적전시관도 무료입니다. 밖에서 본 빈 잔디밭이 실제로 어떤 건물들이었는지 모형과 그림으로 정리해 두었으니, 야외를 먼저 걷고 전시관에서 답을 맞춰 보는 순서를 권합니다.

쌍릉과 고도리 석불 — 무왕의 흔적을 마저 훑는 30분

왕궁이 있던 자리에 나중에 절이 들어섰습니다. 익산에서는 한 뼘의 땅이 두 시대를 겹쳐 품고 있습니다.

해가 남았다면 금마 쪽으로 되돌아오면서 두 곳을 더 붙이면 알맞습니다. 먼저 쌍릉입니다. 소나무 숲에 둥근 봉분 두 기가 떨어져 앉아 있어 대왕릉·소왕릉으로 부릅니다. 2018년 대왕릉에서 나온 인골을 분석한 결과 60대 남성이 7세기 전반에 묻힌 것으로 나와, 미륵사를 세운 그 무왕일 가능성이 크게 높아졌습니다. 앞서 본 절터·왕궁터의 주인공이 누워 있을지 모르는 자리인 셈입니다.

쌍릉 대왕릉 — 솔숲에 둘러싸인 둥근 봉분. 안에서 나온 인골이 무왕일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쌍릉 대왕릉 — 솔숲에 둘러싸인 둥근 봉분. 안에서 나온 인골이 무왕일 가능성을 크게 높였다

그다음이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입니다. 들판 한가운데 키 4미터가 넘는 돌부처 두 기가 200미터쯤 떨어져 서로를 마주 보고 서 있습니다. 머리에 네모난 갓 같은 돌을 얹은 모습이 소박하다 못해 어딘가 익살스럽습니다. 마을에는 이 둘이 일 년에 한 번, 섣달 그믐 무렵에만 만나 회포를 풀고 돌아간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유적을 종일 본 끝에 들르기에 가벼운 자리입니다.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 들판에 선 4미터 넘는 돌부처. 200미터 떨어진 맞은편에 짝이 되는 한 기가 마주 서 있다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 들판에 선 4미터 넘는 돌부처. 200미터 떨어진 맞은편에 짝이 되는 한 기가 마주 서 있다

둘째 날 아침 — 나바위성당, 한옥 지붕에 종탑이 얹힌 성당

둘째 날은 방향을 바꿔 서북쪽으로 갑니다. 익산 시내에서 차로 30분, 금강이 흐르는 망성면에 나바위성당이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기와지붕이 길게 이어진 한옥인데, 그 한쪽 끝에 고딕 양식 종탑이 뾰족하게 솟아 있습니다. 처음 보면 눈이 한 번 멎는 모습입니다.

나바위성당·함라마을
입장료둘 다 무료(성당은 미사 시간 피해 관람)가는 법익산 시내에서 나바위성당까지 차로 30분 안팎(망성면), 함라마을까지 다시 30분소요성당 40분~1시간, 함라마을 돌담길 1시간 안팎함께나바위성당 본당·종탑·김대건 신부 순교기념 자리 · 함라 삼부잣집 고택과 옛담장팁성당은 기도하는 공간 — 안에서는 조용히, 사진은 미사가 없는 시간에
함라마을은 관광지로 꾸민 곳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마을입니다. 담장 너머 마당을 들여다보거나 대문을 여는 일은 삼가는 편이 좋습니다.

이 성당이 여기 선 이유가 있습니다. 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고 돌아와 첫발을 디딘 곳이 바로 이 앞 황산나루였습니다. 그 일을 기념해 성당을 세웠고, 지금 건물은 1906년에 지어 1987년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건물 자체가 우리 근대사의 압축판입니다. 처음에는 온전한 목조 한옥으로 지었다가, 1916년에 일부를 벽돌로 바꾸고 종탑을 올렸습니다. 그래서 한 건물 안에 기와지붕과 붉은 벽돌, 나무 기둥과 아치창이 함께 있습니다. 서양에서 온 종교가 조선 땅에 자리 잡으며 어떻게 모양을 맞춰 갔는지가 건물 한 채에 그대로 새겨져 있는 셈입니다.

봄날의 나바위성당 종탑 — 기와지붕 위로 고딕 첨탑이 솟았다
봄날의 나바위성당 종탑 — 기와지붕 위로 고딕 첨탑이 솟았다
한옥 지붕과 붉은 벽돌이 한 몸이 된 측면 — 1916년에 목조 일부를 벽돌로 바꾸며 생긴 모습이다
한옥 지붕과 붉은 벽돌이 한 몸이 된 측면 — 1916년에 목조 일부를 벽돌로 바꾸며 생긴 모습이다

나바위성당을 어떻게 볼까 — 마룻바닥과 남녀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면 더 흥미롭습니다. 유럽 성당처럼 돌바닥에 긴 의자를 놓은 것이 아니라 나무 마룻바닥이고, 흰 기둥이 줄지어 지붕을 받칩니다. 지어질 당시에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아 미사를 드렸습니다. 게다가 그때는 남녀가 한자리에 앉지 않던 시절이라 가운데 칸막이를 두어 자리를 갈랐습니다. 지금은 의자가 놓였지만 기둥과 마루의 짜임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서양에서 온 종교가 조선 땅에 자리 잡으며 어떻게 모양을 맞춰 갔는지가 건물 한 채에 새겨져 있습니다.

나바위성당 내부 — 마룻바닥과 흰 기둥이 줄지어 섰다. 지을 당시에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아 미사를 드렸다
나바위성당 내부 — 마룻바닥과 흰 기둥이 줄지어 섰다. 지을 당시에는 신발을 벗고 마루에 앉아 미사를 드렸다

다만 이곳은 지금도 신자들이 기도하는 공간입니다. 미사 시간에는 들어가지 않는 편이 좋고, 안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사진은 조심스럽게 찍는 것이 예의입니다. 성당 뒤편으로는 김대건 신부를 기리는 순례길이 이어져, 천천히 걸으면 40분에서 한 시간이 듭니다.

함라마을 옛담장 — 삼부잣집이 남긴 돌담길

마지막 자리는 함라마을입니다. 나바위에서 금강을 옆에 두고 서쪽으로 30분쯤 달리면 나옵니다. 이 마을이 특별한 것은 돌담 때문입니다. 흙과 돌을 섞어 쌓아 올린 담장이 골목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데, 그 자체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담장을 만든 것은 구한말 이 마을에 살던 세 부자입니다. 김안균·이배원·조해영 세 집안의 고택이 지금도 남아 있고, 그 집들을 두르던 담장이 골목의 뼈대가 되었습니다. 담이 높은 것이 아니라 길고 낮게 이어져서, 걷다 보면 담 너머로 감나무와 기와 끝이 자꾸 보입니다.

함라마을 옛담장 —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이 고택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함라마을 옛담장 — 흙과 돌을 섞어 쌓은 담이 고택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담장길 사이의 골목 — 관광지로 꾸민 곳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담장길 사이의 골목 — 관광지로 꾸민 곳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 사는 마을이다

한 가지 당부드릴 것이 있습니다. 함라는 지금도 주민이 사는 마을입니다. 대문 안을 들여다보거나 마당에 들어서는 일은 삼가고, 개방된 고택만 둘러보는 편이 좋습니다. 골목이 좁아 차는 마을 입구에 세우고 걸어 들어가는 것이 서로 편합니다.

익산, 언제 어떻게 돌면 좋을까

익산 여행의 성격은 그늘 없는 벌판을 걷는 일입니다. 절터도 왕궁터도 나무가 거의 없는 너른 잔디밭이라, 계절이 만족도를 크게 가릅니다. 봄과 가을이 가장 편하고, 한여름 한낮은 각오를 하고 나서야 합니다. 겨울은 바람이 매섭지만 사람이 거의 없어 너른 유적을 혼자 걷게 됩니다.

요일도 한 번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국립익산박물관과 왕궁리유적전시관은 월요일에 문을 닫습니다. 야외 유적은 상시 개방이라 월요일에도 볼 수 있지만, 탑 안에서 나온 사리장엄구를 놓치게 됩니다. 이 코스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이 될 수 있어 요일부터 맞추는 편이 낫습니다.

겨울 미륵사지와 미륵산 — 잎이 진 계절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너른 절터를 혼자 걷게 된다
겨울 미륵사지와 미륵산 — 잎이 진 계절에는 사람이 거의 없어 너른 절터를 혼자 걷게 된다

차가 없다면 어떻게 돌까

익산역은 KTX와 SRT가 서는 호남 교통의 요지입니다. 서울에서 한 시간 반 남짓, 광주·전주 방향으로도 갈아타기 좋습니다. 문제는 역에 내린 다음입니다. 유적이 시내 밖으로 흩어져 있고 시내·농어촌버스 배차가 촘촘하지 않아, 버스만으로 돌면 기다리는 시간이 걷는 시간보다 길어지기 십상입니다.

차가 없다면 욕심을 줄이는 편이 낫습니다. 첫날은 미륵사지와 국립익산박물관 한 권역만 묶습니다. 이 둘은 붙어 있어 버스 한 번으로 닿고, 반나절이 알차게 찹니다. 왕궁리는 택시로 왕복하는 편이 시간을 훨씬 아낍니다. 둘째 날 나바위성당과 함라마을은 대중교통으로 잇기가 까다로우니, 하루짜리로 줄이거나 시내에서 택시를 대절하는 쪽을 권합니다.

겨울 미륵사지 당간지주 — 잔디가 마른 계절에는 절터의 크기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겨울 미륵사지 당간지주 — 잔디가 마른 계절에는 절터의 크기가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축제 일정이나 유적별 안내는 익산시 문화관광에서, 유적의 지정 내용과 발굴 소식은 국가유산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익산은 기대를 크게 잡지 않고 갔다가 크게 남는 도시입니다. 화려한 볼거리는 적지만, 무료로 열린 유적이 넓고 사람이 적어 자기 속도로 걷게 됩니다. 부여·공주를 이미 다녀왔다면 백제의 마지막 한 축을 채우는 여행이 되고, 처음이라면 가장 조용하고 가장 넉넉한 백제를 먼저 만나는 셈입니다.

무엇을 보나백제의 세 번째 왕도 — 남은 것은 절터와 왕궁터, 곧 너른 빈터다
요금미륵사지·왕궁리·쌍릉·나바위·함라 전부 무료, 국립익산박물관도 상설전시 무료
동선첫날 동남쪽(금마·왕궁면) · 둘째 날 서북쪽(망성·함라면) — 방향을 갈라야 되돌아가지 않는다
주의국립익산박물관·왕궁리유적전시관 월요일 휴관, 요일부터 맞출 것
계절그늘 없는 벌판을 걷는 여행 — 봄·가을이 가장 편하고 겨울은 한산하다